https://www.youtube.com/watch?v=IY7XOnj9FfQ
500년 전에 존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모든 지혜, 곧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오늘날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얻기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는 하나님이시죠
그는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버겁다고 다들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또한 어렵다는 점은
잘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대담한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아는 지식에는 자기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 둘 다가 필요합니다
한편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아마 더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모르는데 말입니다
지구상에서 누구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깊이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했지요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던 다윗은 시편 19장 12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즉 우리는 절대로 자신의 죄악됨을 바닥까지 다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절대로요
우리는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할 때 반드시 고백과 함께
나의 자기정당화 안에 깊이 쑤셔박혀서
내가 보지 못한 죄악들에서 벗어나길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드러내기 전에 결코 보지 못할 죄악들 말입니다
자기 죄악을 샅샅이 알아야 용서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멸망할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죄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요
여러분이 얼마만큼 죄책감을 느끼든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그 악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런 책인 성경은 자신을 깨닫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을 깊이 알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중대하게, 그리고 그 정도까지 진실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에 대해 분명하고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그토록 분명하고 충격적으로 말해주는 이유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깨닫고
하나님이 그것을 주실 때 기뻐 춤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시리즈의 주제는 ' 거듭남 ' 입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요한복음 3:7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다시 말해,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거듭남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 시리즈에 엄청난 무게를 느낍니다
경박하게 대하거나 농담을 하거나 재미를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심기일전이나, 도덕적 개선이나, 자기 훈련이 아닙니다
문제는, 거듭남이 왜 필요하죠? 왜요?
우리에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냥 새출발하면 안 되나요?
자기 개선 단계를 밟기만 하면 안 되나요?
아니요, 에베소서 2장 1절,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
에베소서 2:1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에베소서 2:4~5
두 번이나 나옵니다
"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
즉 두 번 나옵니다, 1절과 5절,
우리는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5절에 해결책이 나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고 "
4절에서 그 뿌리가 나옵니다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셨도다 "
따라서 하나님의 행동 아래에 뭐가 있나요?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입니다
자신이 죽었었다는 걸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결코 충만하게 누리지 못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며, 착실하게 살았어 "
" 뭐가 그리 대단하지? 왜 손까지 들고 찬양하지 ?
이 구원이 뭐 그리 거창한 거라고 ? "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을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하나님의 큰 사랑과
주권적인 은혜가 있어야만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은 중생과 동의어입니다
중생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죽어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말과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중생,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것,
중생을 경험하는 것,
신생,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독특한 경험입니다
이것은 결혼, 사랑, 언약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결혼하여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겠다고 맹세하신 겁니다
어느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이제 결혼했으니 끝났다, 이제 내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특별한 언약의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자가 거듭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으로 언약맺어졌음을 아십시오
당신은 분명 죽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큰 언약적 사랑, 넘치는 긍휼, 주권적 은혜,
이 세 가지를 이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긍휼, 사랑, 은혜
그렇다면 왜 거듭남인가?
다른 방법으로 하실 수는 없었나?
덜 극적이고, 덜 초자연적이고, 덜 무서운 방법은 안 되나?
왜 하필 이런 방법일까요?
왜 이것이 필요할까요?
그것이 오늘 주제인데 주님의 뜻이면 다음 주에도 살펴보겠습니다
즉 왜 거듭남이 필요한지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설교합니다
거듭남이 무엇인지는 이미 설교했고
왜 거듭남이 필요한지
설교 두 개를 전하겠습니다
왜 거듭남이 그토록 필요한가요?
오늘 본문에 한 가지 주요 이유가 나옵니다
즉 우리는 죽어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성경에서 " 죽어 있음 " 을 설명하는 9가지 다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거듭남이 왜 필요한지 10가지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추가설명은, 우리가 거듭남을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지
여러분이 이해하더라도
왜 용서와 칭의면 충분하지 않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 마십시오
지난 9년 동안 들었던 설교가 로마서 아닙니까?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건
우리 의가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의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되어야 합니까?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10가지 중 첫 번째 입니다
이 10가지는 제가 제 자신을 제대로 알도록 도우려는 시도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모릅니다
야고보는 성경을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비유합니다, 그렇죠?
화장실 거울은 거짓을 보여줍니다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보고 기분이 나빠질 수 있지만 진짜 깊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구, 주름 더 늘었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종류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들어올리고자 합니다
존 파이퍼가 하는 말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다만 제가 성경을 읽을 때는 귀를 기울이십시오
첫 번째,
중생하기 전에
우리는 죄 가운데 죽어 있었습니다
죽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이죠?
생명이 없는 거죠
그러나 육체적 생명 없음, 도덕적 생명 없음이 아닙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에베소서 2:2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따르고 있었습니다, 두 다리로요
3절, " 육체의 욕심 "
"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3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었다는 의미가 뭡니까?
행하고 따라가고 욕심을 갖고 원합니다
죽은 자가 하는 일이 뭐죠?
이것은 영적으로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하여 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겁니다
반응이 없고 무감각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복음에 대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해
예수님의 주되심에 대해
감동도 일깨움도 사랑도 없고
얼싸안는 것도 보물로 삼는 것도 없습니다
나쁜 것엔 열광해도
옳은 것엔 냉담합니다
영적으로 죽었으니까요
두 번째,
중생을 떠나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3절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3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이냐에 있습니다
내가 나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타인이 아닙니다
나의 부모는 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직장이 내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내 문제입니다
이 구절은 그것을 말합니다
나는 본질상 진노를 받기에 적합합니다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진노하시는 것은
너무나 합당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하시지 않는다고
너무 쉽게 단정하지요
우리는 진노를 받는 존재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그게 우리 모습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죄악 속에서 잉태되었고 죄 가운데 태어났다고 다윗은 말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패하고 반항적이며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노여워하는 여러분 모습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입니다
나는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가
악한 일을 해서, 악한 본성을 얻은 게 아닙니다
이를 일컫는 신학 용어가 있지만
굳이 거론하진 않겠습니다
혼란스러우니까요
선하거나 중립 상태로 시작한 후 악한 일을 해서
악한 본성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악한 본성이 생겨 악한 일을 계속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노의 자녀입니다, 그게 나입니다
내 본성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남에게 항상 요구하기만 합니다
또한 내가 천성적으로 정말 잘하는 일은
남에게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 남보다 뛰어난 분들이 있죠
사실 누구나 꽤 잘 하지요
방법도 수없이 많습니다
혹시 누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그래 아무개 얘기구먼' 하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완전히 눈이 먼 사람일지 모릅니다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겁니다
바울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진노의 자녀라고 설명합니다
자녀에게 부모가 있듯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겁니다
진노의 자녀입니다
우리 본성은 하나님께 너무 반역적이고
너무 이기적이고 하나님의 영광에 너무 냉담해서
그의 거룩한 분노는 공의롭고 당연하고 선하고 지혜롭고 적합합니다
진노가 부어지는 마지막 날에
어떠한 이의도 없을 것입니다
셋째,
중생을 떠나서
우리는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합니다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한복음 3:19~20
여기서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은 우리의 죽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빛이 비추면 우리는 저항합니다
어둠이 다가오면 덥석 받아들입니다
잘못된 길에 있어서는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어둠은 환영하고 빛은 거부합니다
"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어,
거듭날 필요 없어,
나는 나쁜 것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어 "
사랑해야 할 걸 미워하고, 미워해야 할 걸 사랑하기에
중생이 필요합니다
넷째,
중생을 떠나서
우리 마음은 돌처럼 딱딱합니다
지난 시간에 에스겔 36장에서 보았지요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그런데 에베소서 4장 18절을 볼까요
놀라울 만큼 풍성하고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
평생을 묵상할 가치가 있는 구절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에베소서 4:16
이방인 전체, 우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 역으로 추적해봅시다
어둠, 분리, 무지, 굳어짐의 4단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 있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무지함 때문입니다
" 아 문제는 무지함이군 "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
무지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무지는 주된 문제가 아닙니다
무지 아래에 진리를 거부하는 완고한 저항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말씀처럼
우리는 불의로 진리를 막습니다
라디오로 빌리 그래함 설교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찬양을 들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진리를 거부합니다
무지가 아닌 굳은 마음이 나의 문제입니다
즉 그 무지는 유죄인 무지라는 겁니다
무죄인 무지도 있지만
유죄인 무지도 있습니다
이것은 유죄인 무지입니다
반항과 완고함에 근거하고 있으니까요
다섯째,
중생을 떠나서는
하나님께 굴복할 수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8장 7~8절
" 육신의 생각은 "
말 그대로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7~8
심각한 말씀이지요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뭔지는 아시지요?
9절에 나옵니다
"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
다른 말로, ' 너희가 거듭나면 '
즉 성령과 분리된, 육신의 마음,
자연적인 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태어날 때 타고난 자연적 마음은 하나님께 적대적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너무 반항적이라서
절대 그를 기쁘시게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분께 굴복하지 못하면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딱딱하고 어둡고 죽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여섯째,
거듭나지 않으면 복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 육에 속한 사람은 "
즉, 육으로 난 사람은 육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본성적인 인간, 자연적 인간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매우 중요한 기본 구절입니다
문제는 복음이 지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게 아닙니다
머리에 정확하게 인지되어도
그의 마음이 이를 미워하기에
그의 머리가 이를 '어리석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거듭나기 전에 우리 머리는 마음의 욕망을 따라갑니다
마음의 욕망을 정당화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권위를 미워하면
머리는 그에 대한 이유를 찾아냅니다
하나님과 복음이 어리석어 보이게 만듭니다
거듭난 영혼에게 일어나는 첫 번째 일은
복음이 더 이상 어리석어 보이지 않고
영광스럽게 아름다워 보인다는 겁니다
중생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복음은 더 이상 어리석지 않고
무시되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복음은 이제 나의 필요상 우주의 중심에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영적으로 분별되는 것입니다
기억아힙시오
여기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로마서 7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도덕적 불가능을 말합니다
물리적 불가능이 아닙니다
이 구분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 불가능이란 아주 크고 힘센 사람이 여러분을 꽉 붙들어
여러분이 너무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발생한 일에 대해 여러분은 책임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불가능'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이를 저항하고, 미워하고, 매우 싫어해서, 기꺼이 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제적 불능입니다
마음이 너무 심하게 저항해서 말씀이 오면 붙들어야 하는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의 부패요, 나의 타락입니다
내 교만이고, 뭔가 되어 보려는 욕망이며,
사람을 두려워함이고, 내 안의 추악함입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을 못하게 계속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이 있습니다
나의 불가능은 도덕적 불가능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고 싶다는 소망이 내 안에 없고
뭔가가 나를 못하게 하기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정말 원한다면 하게 됩니다
일곱째,
마지막 요점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고
주님으로 영접하지도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바울이 말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3
이 말씀의 의미가 아닌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무대에 선 배우들이 믿음이 없으면서
예수는 주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로봇도 컴퓨터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죠
또한 위선자 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즉,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도 삶은 엉망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무슨 뜻입니까?
입으로 고백해도 마음은 그렇게 뜻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뿐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보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네, 저의 왕으로 영접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누구도 마음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이 점을 강하게 피력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요한복음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한복음 6:44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6:65
주신다, 이끈다, 오게 하여 준다,
모두 중생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실 때
우리를 중생시키십니다
아버지께서 하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올 수 없습니다
자, 여기까지 우리가 누구인지 7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 3가지가 더 있고
더하여 부연 설명할 게 있습니다
이제 놀라운 소망으로 가득한 말씀을 보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에베소서 2장으로 돌아가 4, 5절을 보겠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에베소서 2:4~5
이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며칠 간 제게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몇 번이나 멈춰서 눈을 감고 고백했습니다
"살아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물에 빠져 수영장 바닥에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합시다
여러분이 어린 아이인데 과속으로 달리는 차가
바로 옆을 휙 스치고 지나갔다고 합시다
어떤 느낌입니까?
아버지가 얼른 붙잡아서 길 밖으로 옮긴다면,
수영장 위로 겨우 나왔다면
조금 스치기는 했어도
죽지 않았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런 느낌을 아시길 바랍니다
그보다 더 많이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크신 사랑으로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당신은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언제 읽든지 긍휼과 사랑과 은혜를 확신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무엇일지 궁금하시다면
바로 이 구절이 정답입니다
이리로 가십시오,
이 구절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나는 죽어 있었습니다
긍휼은 풍성하고 값없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찬양 가사 같지요?
"긍휼은 크고 은혜는 값없네 나를 향한 무수한 용서가 있네"
은혜, 긍휼, 사랑
그분이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반응을 보겠습니다
한 가지 가능한 반응은
"하지만 이건 이런데...어떻게 목사님이..하지만 나는 해당 없는데.."
이론적, 비인격적 반응, 적당히 끼워 맞추려 하고,
말이 되나 따져 보고...그런 반응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두 번째 반응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첫 번째 반응부터 거쳐야 하겠다면
인내를 가지세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제가 원하고 하나님이 바라신다고 믿는
두 번째 반응은 이런 모습입니다
" 하나님 제가 오늘 여기 있는 이유가 있겠지요
당신이 정말 계신다면, 저는 지금 여기서 제가 얼마나 곤궁한지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우연이 아닐 것이며
당신이 제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이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저는 원하지도 않았지만 여기 앉아 있습니다
제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이 긍휼과 사랑과 은혜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하나님, 저는 더 이상은 반항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굴복합니다
이제 저의 죽은 반역은 이게 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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