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6oFEV4kzcE&feature=youtu.be

▶ 질문자 :

이 질문은 라비에게 하겠습니다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장난기 쫙 빼고 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남자에게 방아쇠가 당겨지는걸 지켜보고 있었죠

만약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었다면 왜

그 총이 작동하지 않도록 막지 않았나요?

왜 그 불쌍한 사람이 그냥 죽도록 놔둔겁니까?



▶ 질문자 :

악마의 대변인을 자처하신 질문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을 막지 않으셨냐고 물으셨죠

기어코 방아쇠를 당겨서 그러한 처형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전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윤리는 

바로 사랑의 윤리라고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지성과 감정의 절정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사랑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도록

만드는 일이기에 수호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40대에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연인인 라비 로즈가 있었습니다

와일드는 라비에게 물었습니다



" 너는 어린 소년들 중에서 단 한명이라도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랑해본 적 있어? "



이것은 쾌락주의자였던 와일드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40대에 치르는 임종의 병상 중에서 말입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 라비, 단 한번이라도 소년들을 목적 없이

순수하게 사랑해본 적 있어? "



라비 로즈가 답했습니다

" 아니, 난 그랬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



와일드가 말했습니다

" 신부님을 좀 모셔와줄래? "



그리고나서 그는 ​' 레딩 감옥의 노래 '라는

어마어마한 시를 지었습니다



마음을 흔들어 놓는 모든 비통함

눈물을 흘리게 한 그 모든 비애와

몰아치는 후회와 핏물 같은 땀 방울들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네

하나 이상의 생을 살아야 하므로

한 번 이상 죽어야만 하기에..



형무소의 감방이나 마당에서 무너지는 

모든 인간의 가슴은

바로 그 깨어진 옥합과 같으니

주님께 보배로운 선물이 되어

부정한 문둥병자의 집안 가득

값비싼 나드향을 채웠다네



아! 아름다운 날이여! 마음이 깨어져

평화와 용서를 얻었다네!

그 방법 외에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계획을 실행하여

죄로부터 자기 영혼을 정결케 할 수 있겠는가?

그 방법 외에 마음을 깨뜨리지 않고서

어떻게 그리스도 주님께서 들어가실 수 있겠는가?

오스카 와일드 <레딩 감옥의 노래>





그 시를 통해 오스카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마음을 깨끗히 하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용서하실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심지어 쾌락주의자마저도 진짜 기쁨이 뭔지 알고,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윤리로서

가치있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유로운 의지 속에 속해있지 않으면 

사랑이란걸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의지 없이 사랑이란걸 할 수 없어요.

만약 여러분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기계적인 강요를 받고 있다면, 

절대로 사랑할 수 없겠죠.

순응할 수는 있겠지만 선택을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사랑이 최고의 선이라면, 

자유란 것은 사랑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그 분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사랑을 풍성히 표현할 수 있는 

필수적인 구성요소를 훼손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 방아쇠를 항상 멈춰달라고 요구할거면 

끓는 물을 건드릴 위험이 있을 때마다

얼음물로 바꿔달라고 하지 그럽니까



아니면 다음에 차도를 건널 때 차에 치일 위험이 있다면 

다리를 자동으로 잡아당겨달라고 요구하거나요.

필요할 때마다 멈춰달라는 것이 언뜻 보기엔 아주 괜찮아보이지만

그런 요구는 하나님더러 우리를 보호하는 대신에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요구는 사실상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고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방법을 잃겠다는 작정입니다.



만약 최고의 선인 사랑과, 

또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동시에 보장된다면 

다른 모든 뜻하지 않은 사건들도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따르거나 거부할 권한이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궁극의 윤리인 사랑이 가능하게 되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기계 반응처럼 자동으로 순종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질문 자체가 자기 파괴적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질문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이유는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주변에서 목격하는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최고의 지혜와 지식으로

 궁극적인 통치를 이루실거란 사실을 믿게 될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동양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의 말이 달아났습니다.



말이 달아났을 때 이웃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운이 좋지 않군요, 안그런가요? 당신의 말이 달아나버렸잖아요”



남자가 답합니다.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몇일 뒤 잃어버렸던 말이 20마리의 야생마를 몰고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웃이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놀랍군요. 불운이 아니라 행운이었어요. 20마리나 더 얻었네요!”



그러자 남자는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뭐 어찌 알겠습니까”



그의 젊은 아들이 새로운 말 중에 하나를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발로 차서 아들의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그러자 이웃이 와서 말했습니다.

“참 불운이군요, 아닌가요? 

이 말들이 오는 바람에 당신 아들의 다리가 부러졌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행운과 불운을 구분하겠습니까”



몇일 뒤 깡패들이 몰려와서 갱에 입단시킬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지 멀쩡한 젊은 남자를 뽑으려했죠. 

그들이 남자의 아들을 지목하려는 찰나 

다리가 부러진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는 안 뽑는게 좋겠다. 다음 집으로 가자”

그러자 다시 그 이웃이 와서 

아들의 다리가 부러진게 행운이라고 말했답니다.



우리는 하물며 이런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세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볼때까지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UP-kPnqDA&feature=youtu.be

'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남들을 위해서 사는 거..

그게 진정한 꿈이지 뭐 '



거리에 앉아서 

애기한테 젖 물리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다

정재완 시인

뭐라고 기도했어?



' 그냥 (돈 많이 벌게) 도와 달라고..'



' 이라크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액자도 팔고 여름에 부채도 팔았다

학교를 지어주고 싶었거든

내가 얼마 안되지만 학교 짓는데 (난민 아이들)

보탬이 되고 싶어 '



' 그런데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통일을 위해서 액자를 팔고 부채를 팔아서

그걸 내놓으려고 한다' 



' 장사를 나 자신만을 위해서 한다면

진정한 꿈이 아니야 '



뒤틀리고 고단한 몸으로 

길거리에서 액자를 파는 재완이지만

얼마전 평양과학기술대학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동안 힘겹게 적금한 500만원을

선뜻 내놓기로 했다



어렵게 모은 돈을 그렇게 내놓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재완이는 이렇게 말했다

" 내 꿈은 사랑이거든 "

https://www.youtube.com/watch?v=ld5QRPTHbTU&feature=youtu.be

 

예수님께서 죄를 다 용서해 주셨어요

그러나 죄의 버릇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쁜 버릇은 세 번이면 금방 몸에 익어요

사흘만 계속하면 평생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버릇은 세 번 가지고 안 돼요

사흘 해도 안 됩니다

3년 해도 안 돼요

3년 새벽기도를 해도 사흘간 늦잠 자면

아침 새벽기도 무너지는 것이 우리의 습관 아니에요?



우리는 뿌리 깊이 박힌 죄의 용서는 이루어졌지만

용서받은 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지 않고

나를 의지하는 바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죄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나는 이제 의인이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싹 텄을 뿐이지

결코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에 세 가지 시제가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미 구원받았어요 죄로부터 용서는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데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 전체를

" 성화 " 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성화의 과정이 끝나는,

천국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흰 옷 입은 백성으로 주님 앞에서 마음껏 찬양하는 삶을

" 영화 " 영광스럽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는 아름다운 영광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가치를 발견하고

우리의 가치 때문에 그 가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전 프로세스를 성화라고 하는 것이죠



목사님, 한편으로

주님이 ' 이미 ' 승리하셨지만

그 완성이 ' 아직 ' 이뤄지지 않은

'이미 그러나 아직'의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받고 회개한 것을

" 그의 나라에 들어갔다 " 라고 한다면

성화 되는 과정은 " 누림 " 혹은 " 머물러 있음 "

이런게 아닌가 싶은 거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세상의 흐름 가운데

성화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매일 누리는 것이 성화라고 말한다면

' 거룩하게 됨 '은 결국 ' 하나님의 소유됨 ' 인데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습관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답게 사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게

간단치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지

성화라는 것을 우리가 도 닦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식성 바꾸는 것하고 비슷해요

우리가 워낙 조미료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떻습니까?

집에서 먹는 밥이 점점 싫어지잖아요

그런데 제가 신앙적인 이유로가 아니라

옛날에 예수님 믿기 전에 단식을 30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그야말로 이제 입맛이 달라진 거죠



조미료가 하나도 맛이 없고

식품 재료 하나하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한 달간 단식하고 새로 먹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익숙해지는 과정을 위해서

고통스런 시간을 겪어낸 것이죠



고통스러운 시간 자체가 우리 입맛을 성화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성화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짜 맛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 전에 우리가 익숙한 조미료 맛이 아니라

그야말로 원천적인 그 모습

원래의 모습, 원래의 맛, 원래의 미각을 회복하는 것이죠

그러나 거기서 구원받으면

그러한 성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는 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iqYOf6BYgKw&feature=youtu.be

아무리 불행한 자리에 있어도

오늘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문제가 해결되어서 행복한 것은 행복이 아니에요

기도응답이 이루어져서 행복한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언젠가 내 상황이 바뀌어서 행복한 것은 행복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불행해질 수 있다는 뜻 이에요



예를 들어서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행복하다는 것은요

언젠가는 그 남자친구가 떠나면

나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사업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요

그 사업이 무너지면 나는 불행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내 밖에 있는 어떤 것에 내 행복의 기준을 늘 달고 

그 어떤 것에 내 자랑의 대상을 달았다면요

근본적으로 나는 불행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대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자랑의 대상으로 삼는 거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내 행복의 기준 삼으래요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사도바울이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 분만을 내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는지 말해주고 있어요

상처받은 사역자 버림받은 사역자 누구든 기억해주지 않는 사역자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이름표 붙인 그러한 사도바울이라는 사역자

14년전에 그 사역자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어떻게 합니까?



낙원으로 데리고 가세요

사방이 막혀 있구요 특별히 초대된 사람만 그 안에 출입이 가능하구요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이제부터 일어날 엄청난 현실에 대해 

그 비밀을 풀어가십니다

그것을 경험을 했어요

이 얼마나 위로였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한번 돌을 맞거나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불안감이 있어요

하나님 내가 언제 또 핍박을 당할까요?



근데 주님께서 말씀하세요

'넌 여기 들어왔으니 여기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해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도들도 너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 마음 너에게 다 나눌게

너 버림받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여기 특별히 초대돼서 들어온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을 너 기억해라'



사도바울의 초창기 사역때 그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줬는지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나니까 사도바울 안에 형성되는 한가지 가치기준이 있어요

사람들이 몰라준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 할지언정

나 관계없습니다

이제 주님만이 내 행복의 기준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자랑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게 되면

내가 자랑하겠다

하지만 나는 별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근데 14년전 있었던 그것은

내 인생을 뒤집어 놓은 그런 현실이었어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 하고 나하고 지금 어떠한 관계인지 기억하니

가장 힘들 때 찾아와 주시고 

가장 아플 때 만져 주시고

가장 힘든 현장에 와서 깊은 교제로 나를 치유하셨던



그분을 내가 정말 경험 했다면요

이제 무엇을 우리가 자랑 삼겠습니까

그것이 인생의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을 이제 정하시고

이제 그 분만을 선택하시며

인생의 바닥을 친 우리의 현실이라 할지라도

오늘 충분히 세워질 수 있는 

그런 행복의 삶을 오늘 이룩하시는 삶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epHQM1EGQU&feature=youtu.be

바울은 지금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이 개최한 청문회장에서 자기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자기 변증은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님을 부정하면서 교회를 짓밟던 자기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임해주셨는지를 청문회장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213km나 떨어져 있는 다메색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 색출하기 위해서

다메색으로 향하는 청년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밟은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그 빛으로 인해서 바울과 그 일행은 모두 땅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유독 청년 바울을 지목하시어

당시 그의 이름인 사울로 그를 부르시면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행전 26:14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청년 바울에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청년 바울은 로마인이거나 인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로마 시민권 소유자였을 뿐

청년 바울은 엄연히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유대인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이셨던 예수님께서 

유대인 청년 바울에게 유대인의 상용어인

히브리어로 말씀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

조금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예수님께서 청년 바울에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음을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을 짓밟던 청년 폭도 바울에게

당신을 맞추어 주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끝도 모를 순례의 길을

해애먀 한다고 오해하던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께 먼저 자신을 맞추어 

하나님을 찾아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으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은 인간 가운데 어느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어 하나님을 찾아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을 맞추어 주시기 위해

인간의 역사속으로 침투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의 외양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짐승의 구유는 짐승의 밥통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더러운 짐승의 밥통을

갓 태어난 자기 자식의 침대로 삼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지체가 높은 사람도

당시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로마 제국의 황제마저도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 발치에도 미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지체보다

더 낮은 지체로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지체보다 더 높은 분이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맞추어 주실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비천한 사람에게도

지체가 높은 사람에게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도

학식이 뛰어난 사람에게도 죄와 악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에게도

자기 근시안과 자기 욕망의 억압속에 갇혀있는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당신을 맞추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부정하던 청년 폭도 바울에게도

당신을 맞추어서 히브리어로 말씀하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BNm4RTYkAE&feature=youtu.be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린도전서 15:10

이 말슴은 저를 너무 크게 일깨워 줍니다

저는 그 시절로 돌아가

바울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것입니다



" 사도님 설명좀 해주세요. 그 말씀이 무슨 뜻이예요? "

" 더 많이 수도했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

저는 바울이 이렇게 설명해줄 것 같습니다



"그래,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뜻이야

다른 사람들이 자러 갔을 때 나는 좀 더 오래 깨어있었어

기도도 하고 전략도 짜느라 말이야

또 아침에는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했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잘하려고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지름길로 가려고 할 때 난 항상 옳은 길만 걸으려 했어

나는 하나님 말씀을 많이 외우고 있어

말씀을 내 마음속에 품었고 말씀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지

늘 주님 말씀에 집중하지 "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이것을 바라본다면

바울은 현재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충실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그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그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 내게 묶인 자가 있다면 바로 지금 그에게 증거하리라

빌립보인들에게 편지를 쓰겠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하리라

나는 다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겠노라 "



여러분께 어떻게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죠

아이를 돌보고 있거나 물건을 팔아야 하거나

세탁을 하고 계실 수 있겠죠

그냥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말씀하세요



" 비록 밖에서 보기에 멋져 보이지 않아도

나는 전심으로 성실하게

종의 마음으로 신실하게

이 일을 감당하겠어

내가 맡은 이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야 "



어느 날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 그래! 필시 그 일 자체가 상급이었을 거야 "

" 과정 자체가 상급이었을 거야 "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목적 안에서 그분을 신실하게 섬길 때

열정이 따라옵니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그분을 위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불현듯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 가운데서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 하나님, 이곳에서 주님을 경험합니다

나는 주님의 선하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주님의 기쁨이 흘러넘칩니다

일 자체가 상급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제게 기쁨입니다 "



과정 가운데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단조로운 일상에 감사합니다



상급은 바로 지금입니다

상급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기뻐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7tVkNk2qdM&feature=youtu.be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스토리 CBSTV '새롭게하소서'

진행 : 주영훈 이정수 여니엘



이단에 맞서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드라마 사바하의 실제 모델 탁명환 소장! 

그의 뒤를 이어서 한국 교회를 최전방에서 지키며 그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는 탁지일 교수의 놀라운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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